나 혼자 쓰고, 나 혼자 보는 일기도 자기 검열로부터 자유롭지 않은데, 그보다 훨씬 공적일 수밖에 없는 이곳 블로그에서 자기 검열로부터 자유롭길 바랐던 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.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.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언젠가라도,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완전하고 또 온전하게 전할 수 있는 때가, 공간이 있기를 내내 갈망한다.
어제 선생님께서는 내게 너처럼 조심스런 아이는 처음 보았다고, 그래서 당신께서도 더 조심스럽고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다. 조금은 벅찬 아이라는 말씀도 하셨다.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고, 조금은 모를 것 같기도 했다. 하지만,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고민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를 결정할 수 있는 내 몹쓸 성격이 관련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. 평생을 시간 강사로 늙어 죽을지도 몰라, 그래도 견딜 수 있겠니. 가장 최악의 순간에 대해서 한 번은 생각해 보았다는 것, 그리고 그 최악의 순간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최소한의 용기와 체념이 담보되지 않을 때 나는 쉽사리 그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다. 그래서 나는 남들처럼 저는 유학을 갈 것이라거나, 갔다와서는 교수가 하고 싶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. 물론 이런 나의 이해하기 힘든 결벽은 실제로 내가 얼마나 큰 야망을 품고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그 야망이 다른 이들의 눈에 쉽게 포착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 성격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. 고등학교 시절에도 나는 책상 앞에 그 흔한 'gogo!서울대!' 따위의 종이 쪼가리를 붙여놓은 적이 없었다. 왠지 속이 너무 뻔히 드러나보이는 것 같아서, 또 왠지 너무 세속적인 것만 같아서,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정도를 '응당'이 아닌 '절실한 꿈'으로 내붙이는 자체가 나를 너무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붙여 놓을 수가 없었다.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나는 내가 참 잘 드러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, 어떤 면에서는 무척 의뭉스러운 구석도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.
몇 번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난 덕분인지 요 며칠은 날이 참 좋다.
가끔 연희관 뒷 벤치에 앉아 햇빛을 쬐고 있으면 살이 바삭바삭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.
바삭바삭, 그 소리가 참 좋다.